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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나는 어떻게 지냈나
    기록물/일상 2020. 12. 4. 19:00

    20년 10~11월
    오랜만에 블로그를 보다보니 내 블로그는 정보 공유용이 아님에도 온갖 맛집과 술 리뷰들만 가득하더라. 기억하기 위해 적는 2020년 하반기의 날들.

    사실 거의 야구와 먹을 것 뿐이다.

    20년 정규 시즌 막경기였던 한화전 집관.
    막홈경기는 보러 갈 수 있었지만 평일 대전에서 열렸던 시즌 막경기는 당연하게도 보러갈 수 없었다. 이미 포시 진출은 확정이었고 이 날 결과로 2~4위까지 모든 경우의 수가 가능했던, 혼돈과 카오스의 경기였는데... 진짜 온 우주의 기운이 다 우리 팀에게 쏠린게 분명함. 다들 긴장이라도 한건지 온갖 실책 퍼레이드를 선보이길래 버스 안에서 중계를 보며 이마를 여러번 짚었다. 그런데 더 긴장한 다른 팀 덕에 놀랍게도 2위를 해버림ㅋㅋㅋ AAA962라니ㅋㅋㅋㅋㅋㅋ 감독님이랑 선수단, 코치진들 얼싸안고 좋아하는데 나까지 울컥했다.

    그리고 내 눈물버튼 자극하신 분. 이 날 선발이 제성이었는데 잘 던지다가 갑자기 삐끗해서 넘어진 순간부터 정신을 못차리더라. 이번년도 제성이는 이상하게 안타깝고 짠했다. 다른 애들은 못하면 욕부터 박히는데 제성이는 욕이 나오다가도 마운드 위 벌건 얼굴이랑 덕아웃에서 초점 빠진 눈으로 앉아있는 걸 보면 더 이상 욕이 안나왔음. 잘되자 제성아...

     유튜브를 해보겠다고, 영상 편집을 실전으로 배우고 있다. 유튜브 고수들은 잘되든 못되든 그냥 막 올리라던데 아직 영상보단 텍스트에 익숙한 세대라 차마 못그러겠음.. 텍스트는 몇 번에 걸쳐 퇴고하고 수정하며 내 나름의 최종본을 올리는데, 영상은 수정이 불가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도통 마무리가 안된다. 지금도 편집을 기다리는 몇 개의 영상이 있는데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 마음을 비워야지 뭐... 별 수 있나.

     

     베이킹에 맛이 들렸다. 마들렌을 세 판쯤 구웠을 때 볼록하게 솟아오른 배꼽에 너무 감격함.. 그런데 연습 땐 이렇게 잘 나오는데 왜 꼭 영상만 찍으면 연습만큼 나오지 않는걸까. 되게 허탈하다.

     

    그리고 플옵 기간, 고척을 열심히 다녔습니다.
    집이랑 가까운 야구장이 있는게 어찌나 다행인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야구장 맥주. 맥주는 마시고 싶고, 맥주를 마시면 경기를 못보고. 진퇴양난에 빠졌지만 난 늘 맥주를 선택했고... 믿기지 않지만 고척엔 모니터가 없어서 늘 5초씩 느린 핸드폰으로 중계를 챙겨봐야했다. 어느 날은 프런트 관계자 분들이랑 같은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게 됐는데, 그냥 똑같은 팀 유니폼 입고 있다는 이유로 내 핸드폰을 보며 5초씩 느린 속도로, 같이 환호했다.

    - 두산 소리지르는데? 뭔 일 났어요?
    = (나, 핸드폰을 보며) 아직... 모르겠는데요...
    - 어? 아닌데? 우리 쪽 소린데??? 막았나본데???
    = (나, 핸드폰을 보며) 두산 지금 쳤는데... 막았네요!?

     

     그럼 멀하나여 두 번 직관에 두 번을 다 짐. 내가 안 간날 기어이 이기는 걸보고 안간다고 다짐했음. 그치만 그건 의미없는 다짐이 되었어요.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플옵인데 그냥 다 갈걸 그랬나봐 ^^! 

     

    집 앞, 진짜 맛있는 중국 요리집을 찾았다. 같은 동네 사는 친구의 추천으로 방문만 해본 곳이었는데 사장님부터 요리사님까지 전부 다~ 우리 취향이셨던거다. 우리 집은 유린기가 맛있다고 다음번에 오면 꼭 유린기를 먹어보라며 살갑게 맞이해주신 사장님의 넉살에 나와 남편은 홀려 넘어갔고 (둘 다 정에 약한 편) 그 다음 방문 때, 유린기를 먹은 후 단골이 되리라 다짐했다. 

    그 이후 한 네 번 쯤 방문했을 때의 볶음 짬뽕. 그냥 이 집은 음식을 잘하시는 듯. 모든 음식이 다 맛있다. 

     

    늦은 가을 단풍맞이 등산. 우리는 산에 오를 때마다 구할 수 있는 저 기념 손수건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 (그래봐야 두 개 모았음.) 산을 앞에 두고 위풍당당한 남편.

     

    와씨 근데 산이 너무 힘들었다. 거의 그냥 악산이었음. 죄다 바위고, 바위도 경사가 너무 높아서 올라가는 내내 남편은 내가 그래서 케이블카 타자고 몇번을 말했느냐며 폭풍 잔소리.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던 나는 입만 꾹 다물고 있다가 거의 중간에 다다르고 나서야 그럴 걸 그랬다고 울먹였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데 너무 힘들어 (ㅠㅠ) 또 약간의 고소 공포증이 있는 나는 온갖 가파른 경사와 바위와 다리와 사다리 앞에서 난간을 붙잡고 지희야 괜찮아!를 중얼거렸다. 

    사진은 내 등산 쏘울푸드 김밥. 등산 전날 김밥 싸는 시간이 디히는 너무 즐겁고 행복해.

     

     ㅋㅣ야ㅏㅏㅏㅏㅏ 하고 들이킨 산 정상 휴게소의 막걸리. 힘든건 뒷전이요, 잔막걸리 한 잔에 행복에 겨웠다. 요즘 산마다 휴게소가 없어지는 것이 추세라던데. 대둔산에는 아직 휴게소 감성이 살아있다. 감자전이며 해물파전이며 너무 먹고 싶었지만 여기서 눌러 앉으면 안돼. 우리 하산 못해 자기야...

     

    친한 오빠 중 한 명이 이 시국에 아랍으로 발령이 났다. 그를 배웅하기 위해 모인 오랜만의 술자리 (라기엔 술 사진 왜이렇게 많지). 마침 그 날 읽고 온 트렌드 매거진에 소개된 술이 있길래, 아이셔에 이슬을 마셔봤다! 개인적으로 그간 나왔던 모든 소주 시리즈 중 가장 내 취향인듯. 친구들은 너무 시다며 표정을 찡그리면서도 내가 계속 이걸 시켜대니 어쩔 수 없이 꿀꺽 꿀꺽 들이킨듯 했다. 

    예전에, 망나니처럼 자몽에 이슬을 한참 들이켰던 기억이 떠올라 잠깐 기분이 생소했음. 그때에 비하면 지금 난 술도 굉장히 많이 줄였고, 그리고 또 엄청 건강해졌고. 너무 행복하다!! 놀고 먹는 재미는 덜하겠지만 또 다른 쪽으로 재미를 찾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 이 날 친구들은 내게 결혼하더니 많이 바뀐 것 같다고 그랬다. 맞다 이 친구들아, 결혼하고선 코로나 핑계로 화장도 안한다ㅋㅋㅋㅋ

     

     안경인들은 요즘과 같은 코로나 시대, 대체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거죠? 안경이 생활화된 요즈음의 나의 첫 겨울.

     

    친구의 결혼식 날. 식이 끝나고 또 다른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서른 한 살 네 명이 내가 구워낸 빵 먹으면서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는 걸 보더니 서른 네 살 남편은 아산에서, 웃으며 집으로 아이스크림을 쏴주셨다.  

     

    이 세상 힙한 것은 다 하는 대성이가 그려준 나와 친구. 혼자 계속 맘에 들어하더니, 집 갈 때 니가 그린 그림은 가져가라고 굳이굳이 챙겨줘도 꿋꿋하게 안챙겨가더라. 아니 다들 자기가 그린 그림은 가져가세요 ^^

     

    내 팀 아닌 야구를 왜 봐?의 (심통난) 나와, 그냥 야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해 포스트 시즌 경기는 다 본다는 남편이 함께 본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 남편은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나는 텔레비전 앞에서 심드렁하게 빨래를 개고 있었다. 그래서 원종현 선수가 마지막 아웃카운트 한개를 남겨놓고 투 스트라이크를 꽂아넣은 순간 남편을 불렀고... 이 장면은 봐야한다며 장갑 내던지고 오는 남편과 함께 숨 멎은 상태로 지켜본 2020 마지막 경기의 마지막 순간. 와. 이제야 드디어 야구 끝났다.

    사실 모두가 인생에 큰 성취를 일궈내고 그럴 수는 없지 않나. 내가 야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그랬다. 나는 매일 실패감에 빠져있고 우울함을 느끼고 있는데... 야구는 심지어 진 팀 조차도 매일매일 모두가 작고 큰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거다. 어쨌든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야만 경기가 끝나니까. 지고 있음에도 공 하나를 잡아서 처리해내는 순간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몇 할의 성적을 갖고 있든 돌아가며 기회를 주는 타석의 공평함까지. 144일을 크고 작은 성취감을 매일 함께 느끼니까 내 감정도 덩달아 성장하는거다. 누가봐도 덥수룩한, 덩치 커다란 어른들 수십 명이 얼싸안고 방방 뛰는 걸 보면 뭐라해야하나, 흐뭇?하기도 하고. 아 흐뭇의 감정은 아닌데. 그냥 같이 기쁘다. 

    사진은 시리즈 MVP 선수가 집행검을 뽑아드는 장면. 이 장면을 보고 남편이랑 나는 와 진짜 게임회사 센스와 쇼맨쉽은 누구도 못따라간다고. 나머지 9개 구단 중 어디서 감히 저걸 따라할 수 있겠냐고 혀를 내둘렀다. 내가 팬이었으면 행복감과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으로 뒤집어졌을듯.

     

    크리스마스 시즌이 찾아왔다. 결혼 전, 남편과 결혼하면 이 날 만큼은 꼭 챙기자고 약속한 기념일 리스트가 있었는데 그 중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 시즌이다. 연말의 묘하게 들뜬 분위기를 나는 너무 사랑하는데 요즘은 그럴 수 없지... 연말 약속도 파티도 모두 취소하고 집에 들어앉아있으니 우울할뻔 했으나 크리스마스 트리로 극복한다!

    근무 시간에 대뜸, 나 오늘 퇴근하면 오빠랑 같이 이케아에 가겠다고 공표를 해서 부랴부랴 트리를 사러 떠났다. 그러나 이 발빠르고 부지런한 한국인들... 이케아 매장에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텅 빈 매대를 보고 허망해하다가 근처 이마트 트레이더스까지 돌고돌아 기어이 오너먼트들을 구매했다. 구매할 때까지도, "네가 하고 싶다면 하는거지"의 수동적 스탠스를 취하던 남편이 막상 트리를 설치하고 오너먼트를 매달고, 전구에 불을 켜는 순간 그 행복을 자기도 알 것 같다고 대답해줬다. 암요. 크리스마스는 모두의 행복을 위한 날인걸요. 요즘은 밤마다 크리스마스 전구를 켜고 잠이 든다. 겨울의 이 느낌 너무 행복하고 따뜻하다!

    본가에 캐나다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구매했던 오너먼트들이 좀 더 있는데 가져올 수 없음이 안타깝다. 좀 더 우리나라에 그 해를 기념할 수 있는 오너먼트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 반, 차라리 내가 만들지 뭐 싶은 마음 반. 그러나 이 사이를 비집고 일벌리지 말자... 를 되뇌이는 마음 또 반이 함께 있다. 도합 150%의 마음을 지니고 아무튼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고 있다.

     

    매년 연말마다 홈파티를 함께 즐겼던 친구가, 모든 친구들에게 어드벤트캘린더를 선물했다. 왜냐하면... 파토가 났거든요, 올해 우리의 모임이 (ㅠㅠ) 이 친구들과의 파티가 매년 이 시즌을 손꼽아 기다리던 이유 중 하나였는데 울적했다. 코로나 미워... 

    하지만 이 귀여운 캘린더를 받아들고 나는 방방 뛰었고. 마치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는 초딩마냥 설레여할 수 있었다. 칭구칭긔 고마우.

     

    퇴근하고 돌아오니 남편이 차려 준 통삼겹살 한상차림. 맛있었고 무엇보다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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