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ohead, The Bends / High and Dry
you'd kill yourself for recognition
- 딱 성인이 되던 날엔 친구들과 함께였다. 수원역 로데오 거리에 있는 2층 삼겹살집에서 싸구려 고기와 맥주를 마시면서, 이제 우리도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며 기뻐했었다. 그땐 차마 소주까지는 엄두도 못 냈었고,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면서 맛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이걸 왜 먹지? 그렇게 생각했으면서도 나는 스무살이 되고 한참을 마시지도, 좋아하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토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냥 나는 성인이 되었고,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쾌감이었다.
최근엔 얼굴도 이름도 직업도 잘 모르는 사람과 오후 세 시부터 맥주를 들고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어떤 술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많이, 자주 먹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웃으면서 떠들다가 뜬금없이 던져진, 인생의 목표가 뭐냐는 질문에 그게 또 웃겨서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만 모여있는 곳에서 좋아하는 거 하면서 나 좋을 대로 살고 싶다고. 그런데 이 대답이 생각보다 되게 이상한 방식으로 내 물꼬를 터뜨렸던 것 같다. 결국, 서로 알게 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사람 앞에서 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내 인생과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오후 세 시에. 맥주를 마시다가.
어릴 때의 나와 동생은 사이가 나쁘진 않았지만, 또 그렇게 돈독한 관계는 아니었다. 나는 동생과 성격이 너무나도 다른데, 그 점을 동생이 조금 힘들어했었던 것 같다. 동생은 공부가 싫고 반항기가 넘치는 그냥 평균의 남자애였는데 나는 아니었던 거다. 평균보다 조금 더 말 잘 듣고 조금 더 자기 의견이 없었으며, 조금 더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았던 누나의 동생은 늘 내 이름을 타이틀로 달고 다녔다. 하교 후 집에서 짜증을 부릴 때마다 나는 뭐 어떠냐? 나쁜 짓 안 하고 말 잘 듣고 착하다고 칭찬받으면 좋지. 라고 대답했지만 걘 그런 날 답답해했었고.
내게 옳고 그르다는 기준은 좀 단순했다.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는 것은 나쁜 것이었고, 이유는 없었다. 그냥 저건 나쁜 거니까. 누군가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고 있으면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었지만 이유를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찾을 생각은 더욱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다고 이야기하면 칭찬해주니까. 그게 맞다고들 하는데 뭐.
그런데 요즘 많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정확한 시점을 따지자면 인생의 목표로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고 싶다고 정한 후부터. 예전이라면 습관성으로 하거나, 하지 않았던 일들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되, 그 이유를 내가 정하지 않은 이유로 설정하지 않을 것이 목표다. 이 새로운 기준 덕분에 나는 꽤 많은 첫 경험들을 시도할 수 있었고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즐거움을 누렸다.
오늘 동생과 밤 산책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말을 꺼냈는데, 계속 비웃고 있던 동생이 담배 한 개비를 건네왔다. 그간 해왔던 다른 결정들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주저하다가 건네받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스무살때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 이걸 왜 하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 못생긴 기계를 돌려주었다.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이제 생각해 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