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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22. 고성 / 천학정리조트에서의 스쿠버다이빙스쿠버 다이빙 2019. 9. 23. 21:55
다이빙풀에서 강습을 받고난 후 1주일 만의 바다 입수다. 분명 시작하기 전엔 설레이고 빨리 가고싶고 기대되고 다 했는데, 날짜가 점점 다가올수록 무섭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수영장과는 다른 공포감이 몰려온 것. 남자친구에게 점점 무서워진다고 겁 내기를 한참. '놀러간다'고 생각을 바꿔먹자 조금씩 편안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되었다. 공기통을 들고 굳이 수심 깊은 곳으로 기어 들어가야 할 날이.
09.20. 홍천 가는 길
금요일엔 역시 Friday Night. 퇴근을 마치고 이동하는 데 적격인 곡이다! 다이빙을 함께하는 일행 중 한 분의 초대로 별장에 가는 길. 남자친구로부터 이야기를 잔뜩 건네 들었던터라 별 가득한 밤 하늘, 타오르는 벽난로, 잔잔할 노래를 기대하면서 이 노래에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거의 네 시간이 걸린 이동 길. 그리고 우리 앞에 도착한 선물, 벽난로!
늦은 밤, 벽난로 앞에 앉아 타닥이는 소리와 함께 잔잔한 음악을 듣는 것은 내 오래된 로망인데 이렇게 실현했다. 별장 주인분이 계속 불을 떼워주신 덕에 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몸을 녹여냈다. 마음이 훈훈해지며 만족감이 차오르는게, 불로 인해 문명이 탄생했다는 말이 무엇인지, 왜 게임 내에서 사람들은 모닥 불 앞에서 체력을 충전하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뻥)그리고 이렇게 오후에 산 어플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저는 수강생인것을요... 곧바로 나를 유혹하는 불을 잠시 뒤로 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벼락치기로 문제를 풀어야만 했다.
09.21. 천학정 리조트밤엔 여유로웠더라도 아침까지 여유로울 순 없었다. 오전 9시에 첫 입수를 시작하기로 한 탓에 나름 일찍 도착한 다이빙샵. 이른 시간이었지만 샵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우린 자리를 잡아 주섬주섬 준비를 시작했다.
이렇게 내 눈 앞에 쌓이는 장비. 한참을 장비를 세팅하고 준비하는데. 점점 무섭기도 하면서, 설레이기도 하면서. 복잡한 마음이 잔뜩 쌓여갔다.
태풍이 오기 전 날이라, 조금은 어둑했던 하늘. 그 덕에 다행히 찌는 듯한 더위는 느끼지 않아도 됐다. 무거운 공기통을 매고 뒤뚱거리면서 겨우 배에 올랐다. 그리고 한참을 달려 포인트에 도착하고, 다이빙을 시작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새파란 물 속들.
난 예전부터 수영을 주로 무언가를 잊는 방법으로 활용해왔다. 일이 힘들거나 사랑에 지쳤을 때에나, 수영을 했던 시기는 내 머릿속을 일상보다 무언가가 크게 차지하고 있을 때였다. 25m 레인을 네 바퀴쯤 돌거나 아니면 되도 않는 영법으로 물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보면 그 상념보다 더욱 중요한 것, 예를 들면 편하게 숨을 쉰다거나 가만히 휴식할 수 있는 여유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수영은 나를 모든 일에서 한 발자국 쯤 멀게 해줬고, 그냥 물 속에서 잠깐 혼자 힘들어하고 나면 금세 괜찮아졌었다.
그런데 물 속에서 가만히 떠 있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과는 달랐다. 물 속은 고요하지만 나름의 소리가 뚜렷했고, 평화롭지만 물 속 모든 생명들은 치열했다. 그리고 나는 휴식인듯 휴식이 아닌듯 물 속을 힘겹게 떠다녔다. 그리고 내가 이만큼이나 조용히, 하지만 열심히 숨 쉬고 있다는 걸 엄청난 호흡 소리(!)로 매 순간 느꼈다. 나는 사람도 무엇도 모르는 물고기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갔다가도, 순간 서로 놀라 돌아서기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며칠이고 바닥에 가만히 붙어있었을 전복과 바위 사이에 잠들어있는 수많은 고기들을 보면서 얘들은 평생을 이러고 살다가 잡히면 또 무엇도 모르고 잡히겠지. 생각도 흘려보냈다.
물놀이를 마치고 수트를 정리하는 데 하늘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이 날 이시간에 내가 이 곳에 서 있지 않았다면 하늘이 이렇게 평화롭고 예쁜 줄 미처 몰랐겠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바다도 하늘도, 고요한 수면과 성난 하늘이 내게 너무 가깝게 다가왔던 하루였다.
오후 9시, 속초 백돈가수곳에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고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고기를 앞에 두고 둘러 앉아 그 날의 바다를 이야기했다. 스쳐보낸 물고기, 나를 치고 지나간 물살, 한참을 내려다 본 말미잘과 불가사리, 내 무릎을 찌른 성게. 그리고 가만히 올려다본 수면과 귓가를 때리던 물방울 소리 등. 다시는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하루를 마무리했다.
맛있는 고기 맛에 감격하면서, 이 날 하루 접했던 모든 것들이 다 행복했다고 느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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