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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7 할머니의 냉이기록물/일상 2022. 3. 13. 16:38
봄이 시작됐음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냉이가 먹고 싶었다. 그거 손질 어려울텐데? 걱정하는 엄마에게 인터넷에서 손질 냉이 많이 판다고, 냉이 무침 레시피나 알려주쇼! 하고 호언장담하면서 통화를 끊었는데 그날 저녁 엄마에게서 사지 말고 기다려보라는 메세지가 와 있었다. 할머니가 직접 캐러 내일 뒷산에 다녀오신다는 거였다.
엄마의 엄마는 딸의 딸이 먹고 싶다는 소리에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엄마는 그 냉이를 받아들고, 조금이라도 상할까봐 한달음에 서울로 올라오셨고. 엄마를 보내고 풀어본 한 봉지 가득한 냉이의 뿌리는 모두 뭉툭했다. 아직 땅이 녹지 않았는데도 서둘러 캐느라 뿌리가 다 끊어져 나갔다고 했다. 손질까지 다 되어있어서 흙 한 톨 묻지 않은 냉이를 데쳐 내면서 혹시 작은 뿌리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냄비를 다 뒤져냈다. 한 뿌리라도 더 캐려고 쪼그려 앉아 산을 뒤졌을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손이랑 등이 떠올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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